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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신천지/하늘나팔소리

[신천지에세이] 마라톤

[신천지에세이] 마라톤





밤새 뒤척거리며 잠도 못 이루고 있다. 처음으로 달려보는 마라톤을 앞두고 긴장한 것일까? 달리기는 좋아하지만, 평소에 운동도 안 하고 나이만 먹어온 탓에 한참을 망설였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평화 마라톤’이라는 취지를 듣고 참가해보기로 결심했는데 막상 코앞에 다가오니, 내가 끝까지 달릴 수 있을지 불안하다.  



 드디어 아침이 왔다. 그런데 창밖을 보니 이게 웬일? 봄꽃이 한창인 4월에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광주역 앞에는 마라톤 선수들과 자원봉사 참여자들로 북적북적했다. 많은 사람 가운데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요즘 바빠진 탓에 소식이 궁금했던 은주였다.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짝이 되었고, 둘 다 20~30대의 청춘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몸을 풀었다. 목에서부터 손목, 허리, 발목 운동……. 남들이 보면 우승을 향한 결의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었다.



 조국 통일을 기원하는 개회사와 예술단의 아름다운 춤사위는 꽃샘추위에 얼었던 선수들의 마음을 한껏 뜨겁게 지폈다. 

 “출발!” 

 힘찬 신호와 함께 2천 명의 선수들이 물밀 듯이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은주와 나도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얼마나 달렸을까? 금세 다리가 뻐근하고 허리에도 통증이 몰려왔다. 아프다는 은주의 말에 힘내라고 다독였지만, 사실 나 자신이 더 걱정스러웠다.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은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에 나이 많은 선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분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다시 마음의 고삐를 다잡았다.



 1km 구간쯤 왔을까? 아픈 친구를 양쪽에서 부축하며 달려가는 청년들이 보였다. 은주와 나도 서로를 눈빛으로 챙기며 계속 뛰어갔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함께 뛰고 있는 은주를 지팡이처럼 의지하며 달렸다. 우리를 응원하듯 얼굴 위에 눈송이들이 내려와 시원하게 땀을 식혀주었다. 

 어느새 중간 지점에 도착했고, 나눠 마시는 물 한 모금이 꿀처럼 달았다. 혼자였다면 아직 반이나 남은 길이 막막하게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곁에는 은주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뛰어온 만큼만 가면 된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속 달리다보니 또 고비가 찾아왔다. 물에 젖은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몸이 무거워지고 숨도 턱까지 차올랐다.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 운동을 게을리했던 내가 후회스러웠다. 

 그때 반가운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은주와 나는 서로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산에 오를 때 마주치는 등산객의 “다 왔어요!”라는 말 같았지만, 그 속에 따스함이 전해졌다. 



 마침내 기다렸던 결승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마음 되어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과 힘차게 나부끼는 평화의 깃발 속을 우리는 뚫고 달렸다. 은주와 나는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고, 서로 얼싸안으며 가슴 벅찬 완주의 기쁨을 나누었다. 둘이 하나 되니 차가운 바람도 시원한 냉수가 되었다. 우리는 고비 고비마다 서로의 날개가 되어 주었다. 




 은주와 나는 다음에도 또 마라톤 하자고 웃으며 약속했다. 역시, 2인 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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