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부흥의 주역 길선주 목사(1869-1935)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1년 전 죽은 친구로부터 재산을 관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재산을 관리하며 미화 100달러 상당을 훔쳤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것입니다.”
길선주(吉善宙, 1869~1935) 목사가 이같이 고백하자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하나둘 큰소리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회개하기 시작했으며,. 이 같은 회개의 물결은 ‘한국교회의 오순절’이라 불리는 평양대부흥을 일으켰으며, 이후 전국으로 퍼지며 성령의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길선주 목사는 평소에 엄청난 열정으로 평양 일대에서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소문 나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장대현교회에서 세계 교회 최초로 새벽기도회를 열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 같은 열정은 평양대부흥을 통해 빛을 발했습니다.
1907년 1월 14일 저녁집회, 헌트 선교사의 설교 후 통성기도와 회개의 시간이 이어졌을 때 길선주 목사가 조심스레 강단에 올랐다 합니다.
강단에 선 길 목사는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는데.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선교사들과 참석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는 통성기도를 하며 큰소리로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바닥에 고꾸라져 울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고통 가운데 부르짖기도 했고. 뜨거운 회개의 물결은 저녁 7시에 시작돼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시 이를 목격한 블레어 선교사는 “그 정황은 실로 글로 적을 수 없을 정도였다. … 기도 소리는 마치 폭포수 소리와 같아서 기도의 대해호(大海湖)가 하나님의 보좌로 밀어 올라가는 듯했다”고 회고 합니다
조지 매큔도 한 편지에서 “성령께서 권능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우리가 웨일즈, 인도 등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에 대해 읽었지만, 이번 장대현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그 어떤 것도 능가할 것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부흥의 물결은 평양을 넘어 전국으로, 교파를 초월하여 다른 교회들로까지 확대 되었습니다.
이에 길선주는 의주와 서울로 가서 부흥운동을 이끌었고.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의 발판이 된 평양대부흥운동, 그리고 그 평양대부흥운동의 시작점은 다름 아닌 한 목사의 솔직한 고백과 회개였으며. 오늘날 교인 수가 급감하고 있는 한국기독교계에 자성과 회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한국교회의 부흥의 시작이 ‘회개’였다는 점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봄직한 대목입니다.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길선주 목사는 처음엔 한학과 선도를 접했습니다. 하지만 유교, 불교, 도교 그 어디에서도 진리를 찾지 못해 답답해하던 중 한 친구를 통해 기독교 서적들을 접하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한국 최초의 기독교신학교인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해 기독교를 좀 더 심층적으로 배웠고. 그렇게 제1회 졸업생으로 공부를 마치고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목회를 통해 40여 년간 약 380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목사·전도사·장로 800여 명과 60개 교회를 세우며 한국기독교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외에도 숭실학교·숭덕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도 힘썼으며, 3.1운동 당시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해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출옥 후에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부흥집회를 이끌고 성경을 가르친 그는 평안남도 고창교회에서 설교하던 도중 숨을 거뒀다.
길선주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의 초석이 되어 지금의 우리가 신앙을 할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그 시대마다 하나님 역사를 이뤄가시고 계심을 (사 14장 24절) 우리는 확실히 믿고, 또한 재림 하실 예수님을 어떻게 알아보고 신앙을 해야 되는지도 우리는 기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시대 약속한 목자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님을 알기로 바라며 , 그리고 복된 길로 오시기 바랍니다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길선주 목사는 처음엔 한학과 선도를 접했습니다. 하지만 유교, 불교, 도교 그 어디에서도 진리를 찾지 못해 답답해하던 중 한 친구를 통해 기독교 서적들을 접하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한국 최초의 기독교신학교인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해 기독교를 좀 더 심층적으로 배웠고. 그렇게 제1회 졸업생으로 공부를 마치고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목회를 통해 40여 년간 약 380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목사·전도사·장로 800여 명과 60개 교회를 세우며 한국기독교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외에도 숭실학교·숭덕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도 힘썼으며, 3.1운동 당시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해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출옥 후에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부흥집회를 이끌고 성경을 가르친 그는 평안남도 고창교회에서 설교하던 도중 숨을 거뒀다.
길선주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의 초석이 되어 지금의 우리가 신앙을 할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그 시대마다 하나님 역사를 이뤄가시고 계심을 (사 14장 24절) 우리는 확실히 믿고, 또한 재림 하실 예수님을 어떻게 알아보고 신앙을 해야 되는지도 우리는 기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시대 약속한 목자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님을 알기로 바라며 , 그리고 복된 길로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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