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 자료실/종교 인물

포은 정몽주



조선도 인정했던 고려의 충신이요,
유학자, 외교가 였던
포은 정몽주 선생




<정몽주선생 영정(우)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초성(좌)>



정몽주(鄭夢周, 1337~1392)는 1337년 경상도 영천에서 태어났다.
고려 인종∙의종 때 추밀원지주사를 지낸 정습명의 후손이지만,
이후 조상은 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머니 이씨가 임신 중의 어느 날 꿈에 난초 화분을 안았다가
갑자기 떨어뜨리고는 놀라서 잠이 깬 뒤 그를 낳았다 하여
어렸을 적 이름은 몽란(夢蘭)이었다.

그러다 아홉 살 되던 해, 어머니가 낮잠을 자는데
꿈에 검은 용이 동산 가운데 있는 배나무에 올라간 것을 보고 깨어
나가보니 배나무에 몽란이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몽룡(夢龍)이라고 고쳤다가 성년이 된 후 몽주로 다시 고쳤다.



정몽주는 한국사에서 ‘충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고려 말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정몽주는 나라가 기울어져 감을 보면서도 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그의 이 같은 태도는 성리학의 핵심 가르침인 충과 효를 실천한 것이었다.
그 길이 비록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호의호식하며 잘살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그는 그 길을 마다하고 선비의 뜻을 지켰다.

또한 그의 효(孝) 정신에 대한 일화도 전해진다.
죽임 당할 것을 감지한 정몽주는 오는 길에 친구 집에 들러 술을 마신 후 말을 거꾸로 타고 마부에게 끌라 했다고 한다.
이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몸이라 맑은 정신으로 죽을 수 없어 술을 마셨고,
흉한이 앞에서 흉기로 때리는 것이 끔찍해 말을 돌려 탄 것이다.

이날 그는 개성 ‘선지교’라는 다리를 지나다 이방원의 부하 조영규 등에 의해 암살돼 피를 흘리며 죽었다. 그 피가 흐른 자리에서 대나무가 솟아올랐는데 이런 연유로 그 다리를 ‘선죽교’라 부른다. 대나무는 곧은 절개를 상징한다.
비록 그의 몸은 죽었지만, 그 충절만큼은 꺾이지 않고 다시 피어난 것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마음을 떠보는 이방원의 ‘하여가’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하며,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정을 나타냈다.

고려 말, 정도전 등 이성계 일파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하자,
포은 정몽주(1337~1392)는 고려의 사직을 지키기 위해 기회를 엿봐 그들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이를 먼저 알아챈 이방원에 의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자신들과 뜻을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답시조를 통해 변치 않는 마음을 드러냈다.
몸이 없어지더라도 임금을 향한 충절만큼은 절대 변치 않을 것이라는 그의 시조처럼 그는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 절개를 지켰다.

답시조를 들은 이방원은 정몽주를 더 이상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해
부하를 보내 그를 죽이도록 했다.

하지만 13년이 흐른 후 그에게 영의정이라는 벼슬과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조선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시기였기 때문에 정몽주 같은 충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선도 인정했던 그의 충절은, 후대에 이색․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으로 추앙받으며 의리․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과거의 삼장(초장∙중장∙종장)에서 연이어 장원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몽주는 당대 최고의 학자 이색을 스승으로 뒀는데,
 
이색은 정몽주에 대해 “학문에서 어느 누구보다 뛰어났으며, 그의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없다”고 평가하면서 ‘동방 이학(理學)의 원조’로 칭했다.
정몽주는 또한 도성에 학당을 세우고, 지방에는 향교를 설치하도록 해 유학융성에 힘을 쏟았다.


정몽주는 성리학자로서뿐 아니라 외교가로서도 유능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려가 명나라와의 외교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가 나서 두 나라의 신뢰를 회복하자는 주장을 펼쳐 전란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또한 두 나라 간의 잦은 분란으로 명 태조가 고려 사신을 유배까지 보내는 상황에서,
명 태조의 생일 사신으로 갔던 정몽주는 뛰어난 외교술로 밀린 조공도 면제받고
유배된 사신들도 귀국시켰다.

그는 일본에도 사신으로 가서 당시 극심한 사회적 문제였던 왜구의 침입을 해결하기도 했다.


이방원은 술상을 차려놓고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자신들과 뜻을 함께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정몽주는 단호한 자신의 마음을
답가로 들려주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방원의 손에 죽었으나, 이방원에 의해 전설이 되다.





정몽주 선생이
이 세상의 나라를 지킨 충절과 외교가이며,  주자학의 대가로써
이 땅의 조상으로 지켜 왔으며,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님은
하늘과 땅의 섭리를 , 이치를  예수님을 통해서 직접들으시고, 보고,
또한 지시한 것을 이 땅가운에 심어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나님,
예수님의 충신으로 살고 계시는 목자 입니다.

이미 흙으로 돌아간 육의 조상도 기리기리 기억 할진데,
영원히 왕과 제사장으로 복을 받을 길을 알려 주시고, 인도하시니,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약속의 목자 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