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슬픈 마음을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의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를 통해서 부패한 선민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외쳤던 이사야 선지자
사1:11 여화와 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구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 하노라
이사야의 이름은 ‘여호와의 구원’이란 뜻이다.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으며 아모스의 아들(사 1:1)이다.
이사야는 한 아내와 두 아들(사 8:3)이 있었다. 그의 첫째 아들은 ‘스알야습(남은 자는 돌아올 것이다)’, 둘째 아들은 성경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마헬살랄하스바스(‘전리품으로 번영한다’는 뜻)’였다. 이는 이사야의 예언이 반영된 이름이다.
이사야는 귀족 출신이고 왕궁에서 성장했으며 문화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불굴의 믿음을 가진 자였다. 그는 또 나라와 민족에 대한 불타는 충성심과 애국심이
있었다.
그는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면서도 위로와 약속을 주었다. 또 그는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쉬지 않고 드릴만큼 긍휼이 충만한 자였다.
그는 담대하고 정직한 자였으며 위대한 웅변가요, 설교자였다. 그는 말씀을 청종하는 자였으며 사랑과 온유함으로 말씀을 전했다. 그는 말씀에 완전한 자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시인의 기질을 발휘했다.
말씀을 구사하는 그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는 유다의 선지자였으나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전했다.
그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많이 해서 ‘예언자의 왕’이라고도 불린다. 이사야는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로서 ‘이사야서’를 기록했다.
그는 B.C.739~681년 약 50년간 예루살렘 도시 안에서 사역을 했다. 당시 유다의 웃시아 왕과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 나라가 최고로 번영했고 권세를 누렸다. 그 부요함과 풍요로움 속에 악이 들어왔고 이사야는 백성이 죄에 물들어 있는것을 보고 회개를 촉구했다.
그는 귀족의 옷차림을 하지 않았고 머리털로 만든 옷을 두르고 다녔다. 당시 이사야는 막강한 권력 앞에서도 왕의 정책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경우 목숨을 걸고 꿋꿋하게 자신의 주장을 외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을 부정한 입술을 가진 죄인으로 여길만큼 겸손한자였다. “화(禍)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했다.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6~8)”
이사야는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쳤다. 특히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했다
.
그는 B.C. 680년경 므낫세 통치 기간에 톱으로 몸이 둘로 잘려 순교(히 11:37)했다.
사 50:4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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