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인들의 고난의 현장
초대 기독교인들의 생활 모습은 지하 교회, 지하 도시, 지하 무덤 등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그들은 굴을 파서 집과 교회로 삼는가 하면, 심지어 무덤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도 주야로 복음 전파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그곳의 흙은 무르고 외부 공기와 닿으면 딱딱하게 굳는 특성이 있어서 땅을 파서 교회와 도시를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초대 교인들은 죽은 성도의 시신을 집 또는 교회 식당 바닥에 묻어두고 함게 지냈다.
그들의 세계에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함께 있어야 할 정도로 고난이 끊이지 않았으나,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두터운 신앙과 사랑이 있었다.
먼저, 터키의 안타키아시(옛 지명은 안디옥)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로 가보자.
박해를 피해 산을 파서 만든 이 바위굴 교회는 넓이가 약 60-70평이며, 교회 뒤쪽에는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의 기도처가 있다.
그 기도처는 산 뒤쪽으로 나갈 수 있는 여러 개의 비밀 통로와 연결되어 있고 통로 길이는 무려 6km나 된다.
어둡고 비좁은 이 동굴에서 베드로는 설교를 하고 예배를 인도하며 기독교 공동체를 이끌어갔다.
후에 이 동굴 내부에 '성 베드로의 교회'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이번에는 지하 도시로 떠나보자.
터키 카파도키아(갑바도기아) 지역 전체에는 150-200개의 크고 작은 지하 도시가 있다.
지하 도시 입구에는 연자맷돌 모양의 돌문이 있는데, 높이는 1-1.5m, 두께는 30-50cm, 무게는 무려 200-300kg이나 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땅 위에서 전도를 하다가 발각되면 이곳으로 도망 와서 돌문을 막았다고 한다.
이 돌문은 안에서만 여닫을 수 있어서 성도들은 외부의 핍박으로부터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문 중앙에 구멍을 뚫어서 바깥을 감시하거나, 그 구멍을 이용해 활이나 창으로 적에게 공격 하기도 했다.
지하 도시 안 통로는 대부분 상체를 구부리고 다녀야 할 정도로 낮고 좁다.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부엌, 창고, 회의실, 공동묘지, 교회 등이 있어 종교 활동과 모든 일상 생활이 가능했다.
대표적인 예로 카파도키아의 데린쿠유 지하 도시를 살펴본다.
그 내부는 약 이천 명이 살 수 있으며, 수많은 환기구, 우물, 물탱크, 출입 통로 등이 광대한 망을 이루고 있다.
현재 공개되는 부분은 지하 8층까지로, 깊이는 55m, 넓이는 1500 제곱미터에 이른다.
그러나 여러 층이 더 있고 주변의 다른 지하 도시와 연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아직도 그곳의 전체 규모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제 지하 무덤을 찾아보자.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기 전, 기독교인들은 극심한 박해를 피해 지하로 들어갔다.
로마는 무덤을 신성 불가침한 곳으로 여겨 자신들의 관할 밖에 두었으므로, 기독교인들은 지하 무덤에서 지내며 종교 의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하 묘지를 카타콤(catacomb)이라고 부른다.
카타콤은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시라쿠사, 로마 근교의 섬나라 몰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스페인, 터키(소아시아) 등 여러 곳에 있으며, 특히 박해가 심했던 로마 근교에 많다.
지하 무덤 내부는 대개 폭은 1m 미만, 높이는 2m 정도 되는 통로가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통로 좌우 벽면에는 시신이 3, 4층으로 놓여 있다.
로마 시내와 그 인근에는 45개의 지하 공동 묘지가 있다.
로마의 지하 묘지를 이루고 있는 땅굴의 길이는 약 900km이며, 매장된 시신은 1-3세기에 죽은 것으로 약 6백만 구에 달한다.
지하에서 평생을 살다보지 햇빛을 보지 못해 병으로 죽어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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