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는 반드시 내야 하는가
민수기 18장에서는 십일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7장에서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난 사건을 통해 레위지파를 인정하셨다. 18장에서는 레위지파가 제사장으로서 할 일에 대한 지침을 소상히 내려주신 것을 기록한 것이다. 제사장의 직무와 그들이 취할 몫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려주셨다. 십일조는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날 때 처음으로 언급이 된다. 이 장면을 그린 것이 루벤스의 화려하며 이야기가 있는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만남’이다. 플랑드르 출신의 궁정화가였던 루벤스는 3천점 이상의 그림을 남겼는데, 밀려드는 작업을 혼자 작업할 수 없어서 그림 제작소에서 제자들과 조수들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①오른쪽의 흰 수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멜기세덱이고 왼쪽 무장을 하고 있는 쪽이 아브라함이다. 그리고 아브라함 뒤에 조카 롯을 구하려 전쟁을 치룬 318명의 아브라함의 사병들이 전쟁 후 전리품을 챙겨가지고 아브라함을 따르고 있다. ②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며 떡과 포도주를 주었는데 포도주의 통이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에 있을 법한 포도주통이 아니라 그림을 그릴 당시의 궁정화가였던 자신의 입장에서 당시의 왕궁에서 본 포도주 통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획득한 전리품의 1/10을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그리고 받은 것이 축복의 말씀 그리고 떡과 포도주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바친 십일조는 멜기세덱에게 바친 것인가 하나님께 바친 것인가? 하나님의 대언자였던 멜기세덱에게 바친 것이 하나님에게 바친 것이다. 그리고 대가로 받은 것은 떡과 포도주인데 떡과 포도주가 상징하는 게 있으니 바로 예수님의 살과 같은 생명의 떡이요, 예수님의 피와 같은 포도주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유월절날 밤에 새 언약 하시면서 이 떡은 내 살이요, 이 잔은 내 피라고 말씀하셨고 대대로 기념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썩어 없어질 십일조와 영원한 생명과 바꾸는 것이다. 물질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준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바로 십일조요 헌물이다. 그것을 억지로 하거나 궁색하게하면 하나님께서는 받으시지 않으시고 축복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드리는 십일조와 예물은 믿음 그 자체인 것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 8:8)’.
그런데 오늘날 십일조를 꺼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신이고 교회 안에 사단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안 계시니 물질이 보여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요 대언자라고 자칭하는 종교지도자들이 그것을 사유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도적질하고 도적질하게 만드는가? 몰각한 지도자들이지 십일조를 안 내는 성도의 잘못이라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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