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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通/상식박사

진리란 연구해가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가고 찾아가고 발견하는 것이다

진리란 연구해가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가고 찾아가고 발견하는 것이다






신앙 하면 ‘진리’란 단어를  빼 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과연 ‘眞理’란 무었인가? 얼른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참(변하지 않음) ‘眞’자에 이치(理致) ‘理’를 써서 ‘참 이치’를 말한다. 또 그 뜻은 변하지 않음을 나타내며 ‘참’을 의미하며 그에 반하는 것은 ‘거짓’이 된다.

한편으론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진리’란 없던 것이 만들어지고 창출되는 것이 아니요 사람의 연구에 의해 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태초(太初)부터 있던 것인데 그것은 깨달아 가는 것이고 발견(發見)하여 가는 것이다.

 

즉, 발견된다는 것은 이미 이전부터 ‘존재(存在)’ 했다는 의미며 또 그것을 감추어 놓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 말하면서 깨달아가고 ‘참’을 발견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고 연구해가고 있다.

따라서 하나인 진리가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하면서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사람의 생각인 온갖 ‘설(說)’ 과 ‘론(論)’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그렇게 묻혀 버리고 감춰져 있기에 예수께서 ‘찾으라 구하라 두드리라’ 고 말씀 하셨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오늘날 신앙인들이 그러한 ‘說’과 ‘論’을 진리라 믿고 좋게 여기며 따라가는데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10장5절) 라고까지 말씀 하셨다.

사실은 그것이 바로 진리에 반하는 ‘비진리(非眞理)’임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시84편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라고 기록 되어 있다. 진리는 마치 해와 같다. ‘해’는 원래부터 그렇게 그 자리에 있다.

 

 다만 땅에서 그 빛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다. 즉, ‘지동설(地動說)’이 말해주듯이 태양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고, 지구는 그 둘레를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반해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해왔던 학설이 있다. 말 그대로 ‘설(說)’이다.

이 ‘천동설(天動說)’은 땅은 평평하게 고정되어있고, 태양을 위시한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논리였다. 이렇게 세상의 학문도 온갖 ‘說과 論’이 마치 참 인양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 과학이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이 진리임을 즘명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은 증명 할 뿐이지 하나님의 창조섭리 가운데 태양은 그렇게 그 자리에 언젠가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것이다. 예수님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장6절)고 말씀 하셨다.

 

 따라서 ‘진리’로 오신 예수이기에 갑자기 만들어 지고 나타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은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8장56절-58절) 라고 하셨던 것이다.

물론 들을 귀가 없었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를 돌로 치려했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다.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말씀이다. 그래서 말씀을 ‘길도(道)’ 자를 써서 ‘도(道)’라 한다. 세상에서도 길은 목적(지)이 될 수 없다.

다만 목적지를 가기 위한 수단이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진리’ 곧 태초(太初)부터 살아있어 이 시간까지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경영하심을 길이요 진리인 생명의 말씀을 통해 만들어지고 연구해가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가고 찾고 발견해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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