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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신천지/하늘나팔소리

[신천지 에세이] 박사할머니와 맹추할망구

[신천지 에세이] 박사할머니와 맹추할망구








제 어머니는 여든 문턱에 계십니다. 



  작고 날씬하신 어머니는 그 문턱을 힘겨워 하셨습니다. 무릎도 자주 아프고 기운도 예전같이 않다고 하시면서. 어머니는 보약을 드신 적이 없습니다. 힘들어하실 적마다 권해드려도 한사코 마다하십니다. 보약을 먹으면 죽을 때 고생한다는 잘못된 상식을 굳게 믿고 계신데다 자식의 씀씀이가 더 마음에 걸리셨겠지요.   



  어머니에겐 서울에 자그마한 집이 있는데 그 집 지킨다며 혼자 사십니다. 몇 년 전, 저는 살던 동네에서 조금 외곽으로 나오면서 같은 값에 방이 하나 더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방 넷 중 하나를 3년째 비워놓고 있는데도 아직은 아들 며느리 간섭을 받기 싫고, 정든 동네를 떠날 수 없다는 주장이십니다. 어머니 주변에, 늙으면 얹혀산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아 제 집 방 하나는 계속 비어 있을 것 같습니다. 속상합니다. 



  어머니는 마실도 자주 다니십니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며칠씩 연락이 안 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께 핸드폰을 권했을 때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보약보다 훨씬 비싼데도 그때만큼은 자식의 씀씀이를 생각지 않으신 거지요. 오래 전부터 핸드폰을 갖고 싶었는데 말씀을 못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핸드폰을 목에 거신 날부터 어머니는 활발해지셨습니다. 노인에겐 핸드폰이 바로 보약이었습니다. 기력도 나아지신 듯 보였는데 저희 집에 오시는 횟수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거침없이 다니시는 어머니에게 핸드폰은 든든한 나침반이 된 것입니다. 



  어제는 어머니와 친구할머니를 모시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모처럼 아들이 옆에 있어 우쭐하신 어머니는 칠순이신 친구를 '맹한 데가 있지만 길눈이 밝아 데리고 다니는 할머니'로 소개했습니다. 데리고 다니는 관계는 거꾸로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엔 빈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어머니가 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선 옆에 좁은 틈을 손으로 두드리며 친구를 부르는 통에 졸던 옆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친구가 앉자 어머니는 당신이 아니면 서서 갈 뻔했다는 듯이 흐뭇하게 쳐다보셨습니다. 친구할머니는 머쓱한 지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습니다. 



 “아따 내 것은 새 건디 왜 이렇게 진동이 약하디야?"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지하에 있어서 그랴- 지하에, 지하는 진동이 잘 안 와."

 

 

친구할머니가 다시 물었습니다. 



"집에서도 약하던디?"



어머니는 답답하신 듯 친구할머니 무릎을 쳤습니다. 



 "그땐 거는 사람이 지하에 있었겠지-.'



그러면서 어머니는 확인시키려는 듯 친구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 지하에서 걸 테니까 봐봐.”



그런데 친구할머니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엥? 지금은 또 쎄네, 지하인디?' 



저는 어머니의 말문이 막힐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아이고 이 맹추할망구야, 바로 옆에서 거니까 쎄지!"



  어머니는 저를 쳐다봤습니다. 내가 이런 늙은이하고 다니느라 얼마나 답답하겠냐고 묻는 눈망울이었습니다. 저는 끄덕이는 친구할머니를 보면서 제 어머니가 틀렸다고 설명했어야 옳았습니다. 아니 그러려 했는데 기차 안이 갑자기 시끄러워지며 어떤 목사님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말세의 심판을 피합시다. 이제 곧 핵전쟁이 일어납니다. 불바다 가운데서 살아납시다! 핵전쟁이 나도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십니다.”



   목소리는 어찌나 쉬었는지 냄비 긁는 소리 같이 소란스러웠습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친구할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아니 학전쟁이 뭐야? 학들이 전쟁을 햐?”



“아이고 할망구 참내...쯧쯔.. 옛날 전쟁 때는 비둘기를 썼잖아. 

이젠 학들을 쓰게 된대. 비둘기 고 쪼깐한 것들이 얼마나 날겠어? 학은 미국까지 날아가.”


“아이고 형님은 참말로 박사네 박사여!”



   맹추할망구와 박사할머니는 죽이 척척 맞았습니다. 박사할머니는 한술 더 뜨십니다. 친구 옆에서 으스대듯 제게 물으셨습니다. 



“그전엔 저런 소리 통 못 들었는데 요즘엔 목사인지 불한당인지 왜 저 눔들이 기차에까지 와서 법석이냐? 점잖은 사람들이 에치뜨가 있어야지, 에치뜨가.”



   에치뜨는 제 어머니가 쓰시는 유일한 외국어인데 ‘에티켓’입니다.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목사님과 어머니가 오늘 스치듯 지나친 건 다행이었습니다. 좀 더 오래 만났다간 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었으니까요.



   물끄러미 어머니를 봅니다. 엉터리 상식으로도 이만큼 씩씩한 우리 어머니....... 핸드폰 덕분에 구순까지 가뜬히 넘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또 드립니다.



[자료 출처]

http://cafe.daum.net/scjschool/MWwM/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