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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신천지/하늘나팔소리

[신천지 에세이] 개떡과 찰떡

[신천지 에세이] 개떡과 찰떡






낙서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어른이 되어가고 있겠지. 그러나 이 말만은 고쳐야겠다. ‘세상에 변함없이 맞는 말은 없을 거야.’ 있으니까 말이다. 변함없이 맞는 말은 진리고 진리의 가치는 불변에 있다. 진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 ‘모든 물체는 땅으로 떨어진다.’ 만유인력의 진리다. ‘굶으면 죽는다.’ 맞다. 이렇게 찾을 게 아니라 진리만 집단으로 모여 있는 곳이 없을까? 성경전서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불변의 진리뿐이다. 그러나 말씀을 담은 성경이 출판사마다 다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 일반인의 책이라도 출판사마다 다르다면 천하호통을 쳐서 거둬들일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시겠는가.



  2014년 염수정 추기경님의 취임 일성은 ‘나만 옳다고 쌓아올리는 바벨탑을 무너뜨리자.’이다. 그게 무너지고 흩어진 뒤에야 하나 됨이 가능하다고 했다. 좋은 지적이시다. 그러려면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 말씀부터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말씀이 하나님이신데(요한 1:1) 경서는 저마다 다르니 말이다. 유불선 3교의 경서가 하나 됨도 바쁜데 기독교 안에서의 성경끼리도 출판사마다 다르니 갈 길이 얼마나 먼가. 



  수많은 곳에서 변질되어 왔지만 시편 94편 1절만 보자





(한글개역)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 

(개역개정)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쉬운성경)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여, 빛을 비추소서

(현대어성경) 복수를 하고야 마시는 하나님, 여호와여, 마침내 보이소서

(새번역성경) 복수하시는 하나님, 빛으로 나타나십시오.

(가톨릭성경) 보복하시는 하느님, 나타나소서





1961년도까지는 ‘보수하시는 하나님’에 이론이 없었다. 그 이후, 한글개역성경 이후 쉽게 쓴다고 변형시킨 개역개정판, 쉬운성경판, 현대어성경판, 새번역성경판, 가톨릭성경판에선 모두 복수나 보복하시는 하나님으로 바뀌었다. 모두 국어사전을 따라 보수자 하나님을 복수자 하나님으로 바꾼 것이다. 



  보수와 복수는 국어사전들 풀이를 보면 ‘앙갚음’과 ‘보복’으로 나와 비슷한 말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사전이 완벽하진 않음을 우리는 시대마다 보아왔으며 3천 년 전에 쓰인 신의 글까지 바꿀 수는 없으므로 ‘보수하시는’으로 표현해야 맞다. 사전의 좀 더 깊은 뜻을 보면 보수(報讐)는 복수(復讐)와 달리 ‘합당한 갚음, 좋은 일로 되갚음’이라는 뜻도 있으므로 복수와는 반대말로 쓰이기도 한다. 1절 문구 바로 뒤만 봐도 안다. ‘보수하시는 하나님 빛을 비추소서’ 아닌가. 이것을 복수자 하나님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학자들의 만행으로 보인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병드는지 생각하지 못한 경홀한 짓이다. 수많은 성도들이 지금 성경 수백 곳에서 ‘보수→복수’로 읽어야 한다. 차라리 개떡을 주면서 찰떡으로 알고 먹으라면 안 먹을 어린아이들까지 멋모르고 먹고 있는 상한 떡이 오늘날의 경서인 것이다. 신의 글을 인간이 만든 사전을 따라 잘못 바꾼 것이니 이 얼마나 우매한 짓인가? 오늘날 목회자를 필두로 한 교계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무지한가를 보여주는 결과다.



  변질된 경서에서 무엇을 구하겠는가. 하나님은 누구든지 이 말씀을 더하거나 제하면, 이 책에 기록된 재앙을 더하거나 천국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겠다고 하셨다(계 22:18~19). 그런데도 성경조차 제각각 변질되고 있다. 우선 경서부터 하나 됨이 시급하지 않은가. 그래야만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 라 할 수 있다. 



  찰떡같은 신앙은 찰떡을 얻지만 개떡 같은 신앙은 개떡을 얻음이 마땅하지 않은가. 개떡 신앙을 해온 사람에게까지 실수로 찰떡을 주시는 일은 단연코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자료 출처]

http://cafe.daum.net/scjschool/MWw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