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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교리비교 16] 요한계시록 15장 2절의 유리바다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 교리비교 16]
요한계시록 15장 2절의 유리바다는 무엇인가?
정말 유리로 만든 바다인가?
이들은 이긴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이겼다는 것인가?

[예장합동 배명식 목사] 유리바다, 고체인 유리와 액체인 바다의 합성어
이긴자, 순교자들 지칭
적그리스도와 싸워 이겨

사도요한은 14장에 묘사된 하늘에 장면을 배경으로 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한 것을 기록한다. “하늘의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았다. 즉, 이 땅에 쏟아 붇는 하나님의 진노의 최후의 단계인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를 본 것이다.

요한은 여기에서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을 보았다. 이것은 필경 4장 6절에 기록된 바다와 같은 바다일 것이다. 유리는 고체이고 바다는 액체다. 이 합성어에 대해 요한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천국에 가면 확인할 일이다.

이 부분의 묘사는 구약 성경의 해막에 있는 롯데아나 사원에 있는 롯데아에 대한 비유와 비슷하다. 이것은 여러 의식들을 위해 사용되는 물을 담아두는 것이었으며 제사장들이 식기에 필요한 것이었다. 이 바닷가에는 순교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어 황홀한 천국의 색조를 반사시키고 있다.

4장 6~8절에서는 그 그림의 가운데에 사자, 송아지, 사람, 날아가는 독수리 같이 생긴 네 생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이와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4장 6절에서 나온 장면과 15장 2절에서의 차이점은 유리바다가 불과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다. 전의 바다와 달라서 불이 섞여 있는 것은 상황이 달라져서 지금은 심판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이 섞인 바다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부터 나오는 성스러운 심판을 말한다.

성경에서 불은 심판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우박에 불덩이가 섞여 애굽에 내렸고(출 9:29), 쭉정이는 불에 던져 태워버리라(마 3:12).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다(히 12:29). 여기 이 장면 전체가 장차 지구상에 내려올 심판의 불빛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직후에 모세의 노래가 나온다. 이 노래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홍해의 온갖 위험을 다 지나 승리하여 나왔을 때 부른 모세의 노래이다. H.B. 스위트 말에 의하면 이들 순교자들은 순교의 바다를 완전히 건너서 하늘의 수정 바닷가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에 지상의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 바다 저편에 가 닿은 것을 지금은 대환란 때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재연하는 장면이다.

순교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이기는 자가 되었다. 여기에 참으로 의미 깊은 것이 있다. 순교자들은 죽었다. 더욱이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추궁을 당했는데 그들은 이기는 정복자로 나타났다고 기록되었다. 그들은 죽었다고 하는 사실로 인해서 승리자가 된 것이다.

초대 교회 기록에는 순교의 날은 승리의 날로 기록하는 것이 많이 나온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진정한 승리는 안전하게 살아가고 고난을 피하여 조심스레 그리고 타산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을 정면으로 대하고 필요하다면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


[신천지예수교 최동희 강사] 유리바다, 속사람 씻어 정결케하는 하나님 말씀

이긴자, 하늘장막 침노한
니골라당과 싸워 이긴 것

모세는 하늘 영계 하나님의 장막을 보고 그 모형과 그림자로 이 땅에 장막(성막)을 만들었다(출 25:8~9, 히 8:5). 그 장막 안에는 계시록 4장에서 요한이 하늘 영계에 올라가서 본 하나님의 보좌 앞 유리바다(계 4:6)를 대신한 것이 있으니 물두멍이다.

물두멍은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회막이나 번제단에서 직무를 이행할 때 죽음을 면키 위해 수족을 씻던 물 담은 놋대야를 가리키는 말이다(출 30:17~20). 그 놋대야는 유리가 없던 시절 오늘날의 유리 거울처럼 사용하던 놋거울로 만들었으며(출 38:8), 바다라고 부르기도 했고(대하 4:6), 이 바다를 12소가 받쳤다(왕상 7:25).

그러므로 계15장 2절 유리바다의 실상은 우리 속사람을 씻어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다. 하나님께 나가기 전 손발을 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심령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 준 로 깨끗하여졌다(요 15:3)’고 하셨고, 제자 베드로는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였다(벧전 1:22)’고 하였으므로, 우리 심령을 씻는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육체를 가진 이긴 자들이 영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유리바다 가에 모인 것은 그들이 모인 곳에 ‘장차 오실 자라(계 4:8)’ 하신 하나님의 영계 장막이 함께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며, 그 유리바다 가는 영적 물인 성경 말씀이 나오는 곳임을 말하는 것이니, 곧 진리를 찾아 모였다는 것이다. 이 처소를 계시록 14장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신 시온산이라 하였고 하나님의 보좌 앞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곳은 12지파가 있는 곳이다.

유리바다 가에 모인자들은 계시록 12, 13장의 현장인 하늘 장막에 침노한 짐승과, 우상과, 그 이름의 수 666을 이기고 벗어난 자들로서 짐승은 세상(바다, 단 7:3, 17 참고)에서 나와 사단(용)에게 권세를 받은 목자(계 17:10, 벧전 2:9 참고)요, 우상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그를 위해 만든 거짓 목자(합 2:18 참고)이며, 그 이름의 수 666은 솔로몬 같은(왕상 10:14~16, 왕상 11장 참고) 멸망자가 된 일곱 금촛대 장막 출신의 목자(땅에서 올라온 짐승)를 가리킨다(계 13장).

이들을 계시록 2장, 3장에서는 싸워서 이겨야할 니골라당으로 표현 했다. 이들의 나타난 증험과 성취함은 오직 계시록 15장의 이긴자들만이 보고 앎으로 그들이있는 유리바다 가를 찾아 나타난 실상을 육하 원칙에 의거 하여 증거 받고 이긴자들과 하나되길 바란다. 계시록 성취 때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과 실상의 인물도 믿는 자이다.

그러나 본 것 없이, 성경적 근거 없이 자기 마음에서 나는대로 증거하는 것은 점치는 복술이요(겔 13:1~9, 계 18:23 참고), 계 22장 18, 19절의 말씀이 자신을 심판한다는 것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이호성 목사] 유리바다, 영계와 물질계를 경계선으로 만든 물
이긴자, 하늘악대 지칭
구원의 노래 부르는 자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장소는 영계와 물질계를 경계선으로 만든 것이 물이다. 그래서 이 물이 물질계 끝에 가면 물벽으로 되어 있다고 보고, 영계에서는 유리바다로 되어 있다. 여기서 불이 섞인 유리바다는 물질계가 불못이 된 모습을 영계에서 보는 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한 일곱 대접 재앙이 극심하고 무서운 재앙이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란 뜻을 살펴보자. 계시록 13장에 보면 거짓 선지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와 그 우상을 경배하게 하고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였으며, 자기 이름 또는 자기 이름의 수를 받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경제적 사회적 제재를 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대환난에서 적그리스도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다. 벗어났다는 것은 물질계에서 영계로 들어왔다는 것이고, 지옥불을 벗어나 낙원 천국에 이른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포도송이로 추수된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될 자들이다.

유리바닷가에 또는 유리바다 위에 섰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섰다는 것을 뜻한다. 에스겔 28장 2절에서 하나님의 자리는 유리바다 중심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긴 자에게 하나님의 거문고를 주는데, 그것은 이긴 자로서 노래를 부르며 연주하도록 하나님의 거문고를 주신 것이다. 이들은 곧 하늘악대이다.

이들은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데, 모세의 노래는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할 때 홍해를 건넌 후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권능을 노래하기 위해 부른 구원의 노래이다. 홍해 도하 사건에 있어서 백성들을 인도한 모세는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홍해 통과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구원 모형이다.

그리고 모세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장차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될 자들이기에 하늘에 와서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화롭게 한다.


[예장합동보수 최영백 목사] 유리바다, 최후 심판 전 선민에게 구원 이름 나타내
이긴자, 진리 깨달아
하나님 좇은 성도들

15장은 3대 7중 역사 가운데 마지막 일곱째 나팔의 일곱 대접 재앙을 보도한 16장에 대한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에 대하여 15장 1절에서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라고 밝혀주었다.3대 7중 역사는 신약 구속사와 관련된 것임을 그동안 거듭하여 밝혀왔다.

그 내용을 조명해 보면 성도들의 구원 역사는 넷째 나팔 때까지 진행된다. 그것은 신약 구속사의 전체를 한 그림으로 보여주는 3번째 삽경인 11장에서 밝혀주는 진리이다. 거기 보면 신약의 복음역사를 상징한 베옷 입은 두 증인이 사명을 다하고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 죽게 될 것을 말씀하였다(11:7).

그런데 그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때를 9장 1~3절에서 다섯째 나팔 때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다섯째 나팔부터 일곱째 나팔까지는 화(禍), 화(禍), 화(禍)로 규정하여 인류를 멸하시는 심판의 역사로 밝혀주고 있다(8:13). 그중 다섯째 나팔에서는 다섯 달 동안 엄청난 고통이 인류에게 엄습할 것을 말씀했다(9:5).

여섯째 나팔은 인류의 3분의 1이 죽는 대재앙으로 묘사되었다(9:18). 마지막 일곱째 나팔에는 일곱 대접 재앙이 들어있고 그로 인해 남은 인류가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 그것이 16장의 기록이다.

그런데 그 서론 격인 15장에서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서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최후 심판의 대 재앙이 있기 전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두 구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거기서 이긴 자에 대한 서술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을 수를 이기고 벗어난’이라 보도하였다.

이는 13장에서의 일곱째 머리로 소개된 짐승과, 새끼양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이적을 행하며 666표를 친 짐승과 관련된 표현이다. 이 두 세력은 신약 교회 안에 들어와 진리를 혼란케 할 사단의 역사라고 앞에서 설명을 하였다. 일곱 머리 짐승은 제국과 같은 세속 권세를 등에 업고 교회를 혼란시킬 세력으로 설명했다.

새끼양의 모습으로 등장한 짐승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이적과 666표를 통하여 교회를 타락시킬 거짓선지자임도 밝혔다. 이긴 자란 바로 이처럼 교회 안에 거짓 것이 횡횡하는 상황에서 그것들에 미혹되지 않고 진리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뜻만을 좇은 성도들을 가리킨다.

이를 로마서 8장 5절로 답하면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는 자’, 마태복음 6장 32, 33절로 답한다면 자기와 자기 세상을 위함이 아니라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사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질문] 요한계시록 15장에 증거장막성전이 나옵니다. 무엇을 증거하기에 증거장막성전이라고 하나? 그리고 왜 이곳으로 만민이 몰려오는지 알고 싶습니다.

* 출처: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60394